[언론보도] 어쩌면 이렇게 고객 마음을 모를까?

윤태성 교수님의 글이 매일경제 오피니언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윤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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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고객이다. 완벽하게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 제조한 상품을 구입하고 누군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품을 팔아주고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기업이 너무 고맙다.

품질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기업을 보면 업어주고 싶을 정도다. 기업이 없으면 고객인 나의 생활 수준도 형편없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업이 신상품을 발매하면 관심이 가고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궁금하다. 나는 기업에 관심이 많은데 기업은 나에게 관심이 있을까? 물론 기업이 내 지갑에 관심이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내 마음에도 관심이 있을까?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혹은 무얼 원하지 않는지 알고 싶을까? 이런 의문이 생기면 고객인 나는 금세 좌절한다. 어쩌면 이렇게 고객 마음을 모를까? 기업은 고객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모를 수 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다. 아예 고객 마음을 모르려고 작정한 듯하다. 나는 꿈을 꾼다. 어쩌면 이렇게 고객 마음을 잘 알까? 이런 기업을 만나는 꿈을.

기업이 선택할 원칙은 간단하다. 고객이 원하면 한다는 원칙이다.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알지 못하니 기업은 설문조사를 하고 니즈조사를 한다. 전화로 조사하고 심층 인터뷰를 하고 관심 그룹을 운영한다. 고객 행동을 관찰하고 암행 조사도 한다.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A/B 테스트도 실시한다.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알려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그러면서도 고객이 정말 원하는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고객은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못한다. 기업에 나쁜 말을 하기도 어렵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지 못하는 이유도 크다. 문제는 또 있다.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설령 안다고 해도 기업이 제대로 맞추기가 어렵다. 고객이 원하는 내용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고객이라고 해도 아침에 원하는 내용과 저녁에 원하는 내용이 다르다. 그렇다면 기업은 쉬운 원칙을 택해야 한다.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무얼 원하지 않는지는 상대적으로 알기 쉽다. 클레임 디자인을 통해서다.

클레임 디자인은 고객이 가질 수 있는 불만을 한발 앞서 예상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는 작업이다.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도 어느 정도 고객 불만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현실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큰 불만을 선별한 후에 대책을 세운다. 고객 불만은 콘텐츠와 콘텍스트로 구분할 수 있다. 콘텐츠는 상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를 말한다. 콘텐츠는 고객과 기업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거나 엉뚱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다. 이에 비해 콘텍스트는 매장 분위기나 종업원 인상처럼 딱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기업과 고객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건 물론이고 고객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대책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얼마에를 명확하게 밝힌다. 경영판단이 필요한지 현장판단이 필요한지도 미리 정해둔다. 고객 불만을 예상하고 대책을 세워둔다면 실제로 클레임이 발생하더라도 쉽게 대응할 수 있다. 클레임은 고객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불만이 겉으로 표출된 형태다.

클레임이라는 단어는 고객의 혈압을 올리므로 가까이하기 싫어한다. 기업에서는 클레임이 사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므로 단어조차 보기 싫어한다. 하지만 클레임은 고객이 기업에 주는 혁신의 계기다.

혁신은 지금까지 없었던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그 단초가 바로 고객 불만이다. 고객 불만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대책을 강구하는 클레임 디자인이야말로 혁신의 출발점이다. 고객은 어떤가. 한번 마음을 들킨 고객은 이후로는 기업에 스스로 마음을 열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렇게 고객 마음을 잘 알까? 감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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