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대덕을 만나다 마지막회 (안철수 교수님)

“강물의 세기 알려면 양말 벗고 뛰어들라” ‘KAIST, 대덕을 만나다’ 마지막회, 안철수를 만나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선택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
▲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2009 HelloDD.com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실패 한 후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10kg의 메모지를 큰 배낭에 꽉 채워 다니는 남자가 있다. 의대 교수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CEO, 대학 교수 등 여러 직업을 거쳐오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안철수 KAIST(한국과학기술원) 석좌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람이란 실패 했을 때 많은 것을 느끼죠. 그런데 그것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또 나태해지죠. 전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많이 했어요. 실패해서 얻은 교훈이라던지 해야 할 일이라던지, 글을 쓰고 싶은 주제를 쉼없이 메모했어요. 그 메모지를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어서 다녔는데, 어느 순간 보니 10kg 배낭에 꽉 차 있더라고요. 메모를 왜 매고 다니냐고 사람들은 물어보죠. 생각해 보니까 이것 자체가 육체적인 무게이기도 하지만 제 고민의 무게이기도 하더라고요.”
“제 고민을 직접 매고 다닌다. 이거 의미가 있는 행동 아닌가요? 사람들이 일을 할 때 책상이 어지러워 있으면 책상을 치워야 겠다고 생각하잖아요. 책상을 치워야 일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까요. 제 머리가 책상과 같아요. 많이 쌓이면 어지러워져요. 견딜 수가 없죠. 그럴 땐 메모를 모아서 책을 써요. 책을 쓰면 머리도 정리됩니다.”
‘KAIST, 대덕을 만나다’의 마지막 멘토는 KAIST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가르치고 있는 안철수 교수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세 명의 멘티(성영화, 권소연, 이다호라)들에게 “멘토라는 개념은 한국말로 번역했을 경우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선생님과 조언자라는 개념은 뜻이 다르다. 오늘 내가 하는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조언으로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중요한 결정을 대신 내려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중요한 결정은 자기 자신만이 내릴 수 있고, 아무리 연배가 차이가 나고 저명한 사람이 한 말일지라도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참고사항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교수는 자신이 나온 기사도, TV 프로그램도 보지 않는다. 보다보면 자신에 대한 외부 평가가 현재의 상황과 똑같은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제가 신문에 처음 이름이 실린 게 1988년이었죠. 만 20여년 전부터 기사에 이름이 오르내렸는데 당시 같이 오르내렸던 사람들 중에 과대 평가돼서 보도가 되면 마치 자신이 진짜 그런 상황에 놓인 양 착각을 하더라구요. 그건 현재 상황이 아니죠. 주위 환경에 따라서 롤러코스터를 타다 보면 망가져요. 무수히 많이 봤습니다.”
안 교수는 “누군가의 조언을 얻을 때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고 말을 듣다 보면 실망하기도 쉽다”며 “괴로울 때야 남이 결정해주면 편하지만 안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면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쉽다. 어떤 일에서든 선택을 함에 있어 나 대신 결정을 내릴 사람은 없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실패 역시 시행착오다. 내가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내가 무엇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잘 안다면 이것은 좋은 경험이 되는 것”이라며 “성공했을 때도 어떤 요인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 객관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 구분돼야”
“전공을 살려 대학원을 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기술경영 대학원 쪽으로 가서 경영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진로가 지금 현재 제일 큰 고민입니다.”
이다호라 멘티의 고민에 대해 안 교수는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의 구분이 먼저 돼야 한다”고 답했다.
안 교수는 “마이클 조던이 야구를 한다고 마이너리그에 들어갔다가 도저히 안돼서 나온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하고 싶은 것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잘 몰랐던 사례”라며 “세상에 수만가지 일이 있는데 그 중에서 자기가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일은 10가지도 안 된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자기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 잡혀서 이건 나한테 안 맞는 일이라고 하고 규정지어 놓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저 역시 33세 경영을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는 경영에 안 맞는다고 말했었어요. 경영을 하려면 사기꾼 이미지도 있어야 하고, 물건도 잘 팔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게 전혀 없다는 게 이유였지요. 그러나 열심히 살다 보니까 ‘남들 만큼 나도 할 수 있구나’ 라는 걸 점차 깨달았어요. 그런 기회가 없었으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겠죠. 무엇이든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끊임없이 시도를 해보는 게 좋아요.”
인생을 살다보면 이전에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이후 좋은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KAIST 학생들의 경우 1분 1초도 낭비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내 제자 중 한 명도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 1년을 고민했다”며 “자기가 혹시나 뛰어들어서 시도를 해보고 나서 안 맞는다는 발견을 하게 되면 어떡하냐는 걱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강물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를 알려면 강둑에서 강물을 쳐다본다고 알 수 없다. 1년 내내 쳐다봐도 알 수 없다”며 “양말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어 발로 느껴봐야 안다”며 경험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해야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며 “인생은 그런 것을 찾는 과정이며, 의미를 느끼고 잘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 역시 직업이 계속 바뀐 이유에 대해 이러한 가치가 잘 맞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편안하고 안락하고 안정된 것 보다 3가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을 낭비하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어떻게든 자기 인생에 교훈으로 남습니다. 나쁜 결정이든 좋은 결정이든 말이죠. 100% 좋은 선택이 있을 수는 없죠. 하다보면 실패를 할 수도 있는 거고요. 미리 미리 계산해서 살다보면 오히려 자기 인생이 좁아지죠. 일단 시도해보세요.”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선택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죠. 베트남 전쟁 때 하노이 수용소에 수감된 미국 스톡데일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포로 생활을 8년간이나 견뎌내고 돌아온 스톡데일 장군에게 어떤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어갔는지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바로 ‘낙관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죽어갔다는 거죠. ‘크리스마스 때면 나갈 수 있을 거야’ 하고 있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면 괜찮아 지겠지’ 이러다가 기대가 연이어 실망으로 바뀌자 결국에는 낙담해서 자살하거나 시름 시름 앓다 죽어갔다는 거죠. 반대로 죽지 않은 자들 대부분은 현실주의자들로 수용소를 나갈 수 있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비한 것이 그들의 생존 원동력이었다고 스톡데인 장군은 말을 했었습니다. 이게 바로 ‘스톡데일 패러독스’죠.”
안 교수의 요지는 막연하게 낙관하기보다는 눈 앞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믿음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투자가들이 100%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투자를 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기업은 7년 정도 걸리는데 7년이라는 것은 3~4년 간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며 “그 사람들이 견디는 것은 믿음과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런 것들이 겹쳐서 계속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뜻이다.
안 교수는 “두 가지가 있어야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다”며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낙관은 단기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오랜 어려움을 견디려면 이성적, 현실적인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람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소질에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직업을 여러 번 바꿨죠. 그래도 도중에 그만 둔 적은 없어요. 사람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중간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게 맞는 길인지 아닌지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사업도 마찬가지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선택이 중요하다는 거죠.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진실되게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면 자기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요. 그런 시점이 있습니다. 선택은 자기 자신만이 풀 수 있는 문제예요.”
안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안 교수는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나에게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일인지, 정말 재미와 열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일인지, 또한 삶에 나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일인가가 중요하다”고 정의했다.
안 교수는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지만 인생에서 성공이 무엇이냐 질문했을 때엔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래야 이 세상 떠날 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지 아닐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에서 주는 성공의 정의, 즉 돈을 많이 벌었고 명예가 있다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며 “자기가 생각하기에 성공을 했다 싶으면 성공을 한 거고, 남들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 존재했을 때의 차이가 없으면 인생 사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왕에 살아있으니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책으로 무언가를 남겼던다던지, 사람들의 생각이 나로 인해 변화했던가 그런 것들 말이죠. 그게 저한테는 성공의 의미예요.”

▲멘티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조언을 아끼지 않는 안철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