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단통법과 소비자를 위한 길 (권영선 교수님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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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선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기고] 단통법과 소비자를 위한 길

2014년 10월1일 단통법이 발효되면서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급변했다. 단말기 보조금은 축소되었고, 단말기 거래는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단말기 유통업자의 생계는 위협받고 있다. 단통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소비자들은 단말기 보조금이 줄어들면서 낮은 요금제를 선택하고 있고, 보조금이 많이 지급되는 구형 단말기를 마지못해 택하고 있다.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은 소비자들이 낮은 요금제를 택하는 것을 소비 행위가 정상화되는 것이고 심지어 통신요금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이는 잘못된 단통법을 만든 뒤 체면을 살리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소비자가 낮은 요금제를 택하는 것은 단통법으로 단말기 보조금이 줄어들면서 통신비 총지출액을 이전과 같이 유지하기 위해 저품질의 서비스를 택하는 것이다. 7만원대 요금제를 택하던 소비자가 5만원대 요금제를 택하면 월당 무료로 쓸 수 있는 통화시간, 문자 수, 데이터 양이 줄어든다. 즉, 소비자가 낮은 요금제를 택하는 것은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 후생이 감소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통신요금이 인하되었거나 통신비 부담이 줄었다고 하려면,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소비자가 이용할 때 지불하는 통신요금이 인하되어야 한다. 소비자가 호두과자 40개를 사다가 20개를 사면 당연히 지출이 줄어든다. 이걸 호두과자 구매 비용이 감소한 것으로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주장을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이 하고 있다.

소비자가 중고 단말기나 3G 단말기를 선택하는 것을 두고 정부는 고가 스마트폰 위주의 소비 행태가 합리화되는 징후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나라 통신네트워크의 품질이 세계 최고라고 주장했고 실제도 그렇다. 통신사는 속도가 빠른 엘티이(LTE) 4G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광고를 했다. 그런 우수한 네트워크를 중고 단말기나 철 지난 3G 단말기를 통해 이용하는 것이 정상인가? 마치 고속도로를 건설해 놓고 우마차나 포니 자동차를 이용하라는 것과 같다. 자신들 잘못을 덮으려고 우리나라 인터넷 생태계를 10년 전으로 퇴보시키는 주장을 계속하는 건 옳지 않다.

정부는 심지어 단말기 보조금이 크게 줄지 않았다고 한다. 통신 3사는 과거 매년 6조원에서 8조원을 보조금으로 지출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통계에 의하면 금년 보조금 경쟁이 심할 때 번호이동 가입자가 약 월 100만명 수준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1년에 약 1200만명이 번호이동을 하는 것이 된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1일 평균 약 7만명이 번호이동을 한다고 해도 월 25일 판매할 경우 1년에 2100만명이 번호이동을 한다. 6조원을 2100만명으로 나누면 약 28만원이고, 8조원을 나누면 38만원이 된다. 만약 1200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50만원 내지 66만원이 된다. 즉, 이통사가 과거 지출한 보조금을 똑같이 나눠 줘도 지금보다는 약 두배에서 네배는 지급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통사만 단통법으로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은 국회와 정부가 정한 경쟁의 틀 속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고 이윤을 추구해 가는 경제주체이다. 그런데 국회와 정부가 잘못된 법을 만들어 놓고 기업을 불러 호통을 치는 것은 경제 규모에 비해 우리 공직자의 생각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가를 방증하는 것일 뿐이다. 이동통신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국회와 정부가 풀어야지 기업보고 특단의 대책을 만들라고 하는 건 앞뒤가 바뀐 것이다.

단통법과 보조금 상한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 소비자가 싸게 사는 걸 막는 정부는 세계에 없다.
권영선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