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新산업전략을 생각한다

채수찬 교수님의 글이 서울경제 오피니언으로 보도되었습니다.

19)채수찬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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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한 말에는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 있다. 그는 삼성전자가 지금 최고의 실적을 내고 있지만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글로벌 기업의 수장다운 문제의식이 보인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상황 때문에 앞당겨진 선거로 인해 준비가 덜 된 채로 집권하게 된 새 정부를 맡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수준의 상황인식이 보이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난 정부의 창조혁신경제는 화두는 좋았으나 전략이 잘못됐다. 원래 혁신이라는 말은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화두였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이전 정권 흔적 지우기(Anything But Roh)’ 차원에서 배제했던 용어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처음에 창조경제라고 했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혼란이 일자 혁신을 덧붙였다. 전략이 잘못된 것은 창업기반 경제를 하겠다고 하면서 재벌주도의 방법론을 택한 것이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지역별로 재벌에게 나눠 맡겼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격이었다.

새 정부는 반재벌 성향의 사람들을 포진하면서 경제의 틀을 바꾸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대안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우리나라 5대 재벌을 해체해야 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근본적 틀을 바꾸려는 의지와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새 정부 사람들은 비리처벌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핵심은 아니다. 재벌개혁은 수단일 뿐이다. 재벌이든 창업이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새로운 산업들에 과감히 투자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바이오 헬스케어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그 안에는 우리나라의 정보기술(IT) 산업을 지렛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도 있다. 그걸로 안 되고 새로운 틀이 필요한 분야로 신약 산업이 있다. 신약은 하나 개발하는 데 조(兆)원 단위의 투자가 필요하고 평균 10년 이상이 걸린다. 몇 조원의 투자로 생산라인을 증설하면 몇 년 내에 원금 회수가 가능한 삼성전자의 전문경영인이 여기에 딱히 투자할 인센티브가 없다. 창업정신(entrepreneurial spirit)을 가진 바이오 분야의 전문가들이 뛰어들어야 하는 분야다. 실제로 최근 한미약품의 성공에 고무돼 많은 신약 연구기업들이 창업되고 있다. 정부와 민간투자자들로부터 30억~90억원 정도의 자금을 조달해 시작한다. 벌써 다음 단계로 100억원 이상 유치한 회사들도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대부분의 창업 기업들이 몇 년 내에 망할 수밖에 없다. 원래 연구실에서 시작된 발견이 신약으로 성공할 확률이 낮기도 하지만 엄청난 자금 소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창업된 신약 연구기업들을 솎아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렇게 해도 절대적으로 국내 자금이 부족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을 제대로 해본 글로벌 인력과 자금을 활용하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타개책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인기가 높다. 국민들이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을 만족시키는 일을 잘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는 약한 것 같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이루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내용은 빈약하다. 이를테면 정말 산업혁명을 하겠다면 지는 산업에서 뜨는 산업으로 노동의 이동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텐데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정책들은 노동시장을 경직화시키는 방향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정부 초기에 인기영합주의와 앞뒤 안 맞는 정책들을 보면서 우려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물러난다는 권 부회장의 사퇴의 변이 가식적인 말로 들리지 않는다. 새 정부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문제 인식과 함께 문제 해결 의지를 보고 싶다. 한국이 일류국가로 업그레이드하는 신산업전략에 대해 더 고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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