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가상화폐의 거품

채수찬 교수님의 글이 서울경제 오피니언으로 보도되었습니다.

19)채수찬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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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미국 대학에 다니던 학생이 필자에게 비트코인이라는 것이 있어 거기에 함께 투자하자는 친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비트코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실패할 거라고 말해줬다. 그때 내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는 현재 시점에서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주요 부분은 화폐이론이었다. ‘왜 화폐가 쓰이는가’ ‘화폐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등은 이론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역사적으로 물건과 물건을 교환하는 매개 수단으로는 곡물·귀금속 등 많은 사람이 가치를 인정해 받아주는 물건들이 쓰였다. 필자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하숙비를 쌀로 지불하는 것이 대세였다. 쌀을 사러 갈 때 사람들이 ‘쌀 팔러’ 간다고 하는 것도 쌀이 화폐였던 흔적으로 짐작된다. 포로수용소나 감옥에서는 담배가 화폐로 많이 쓰였다.

근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폐는 금이었다. 금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어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고 오래도록 가치를 보존할 수 있어 화폐로서 장점이 많다. 최근까지도 국제 거래에서 금이 결제수단으로 쓰였고 주요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는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증서였다. 그런데 한 국가가 금을 화폐로 채택했을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폐 단위로 표시되는 물가가 금 채굴량에 좌우돼 물가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멋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 케인스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금 공급량과 상관없이 국가가 지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라고 제안했고 이제는 당연한 관행이 됐다.

지폐와 같이 내재적 가치가 없는 명목화폐의 발행에는 이득이 따르기 때문에 아무나 발행할 수 없다. 대개 주권국가가 발행한다. 그러나 화폐량이 많아지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화폐 발행에서 오는 이득에는 한계가 있다.

교환가치가 내재적 실질가치를 넘어서는 부분을 거품이라고 한다. 금화나 은화와 같이 실질가치가 있는 현물화폐의 경우라도 화폐로의 가치가 내재적 가치를 넘어선 부분은 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폐는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화폐량을 제한하더라도 그 가치는 본질적으로 거품일 수 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화폐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국가가 발행하는 지폐는 세금 납부 수단으로 국가가 받아주기 때문에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는 금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 가치가 채굴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다른 점도 있다.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거품이다. 하나의 가상화폐가 잠시 가치를 유지하더라도 다른 경쟁 화폐들이 있기 때문에 언제 가치가 증발할지 모른다.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국경을 넘는 인터넷상의 거래와 전자결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편적 회계단위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전자결제 시스템 도입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주권국가들의 통화와 어떻게 연계하느냐 하는 것은 풀어야 할 과제다.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다자간 협력이 필요한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도적 국가들이 좁은 국익의 관점에서 각자도생하고 국제 금융기구들의 힘은 약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십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는 파생상품 등 새로 등장한 금융자산의 본질과 기능을 정책결정자들과 규제기관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 일어났다. 세계화된 금융을 국가별로 규제하고 있는 상황도 문제다. 세계 경제가 데이터 기반의 경제로 변화하면서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또 한 번 위기를 불러올 위험을 지니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 광풍은 걱정스러운 조짐이다.

몇년 전 필자의 말을 듣고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은 젊은이는 현재 월가의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에게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노름판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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