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선 교수님 기고(충청투데이_구직비용 낮추기 위해 정부 노력필요)

최근 고등학생의 봉사활동 성적에 상한을 두는 대학이 증가하고 있다.
봉사활동 실적이 대입의 당락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의 하나라는 생각이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확산되면서,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해외 오지로 봉사활동을 가는가 하면 봉사활동 증빙자료를 사과박스로 제출하기도 한다고 한다. 결국 과잉봉사의 폐단을 막기 위한 정책이 도입된 것이다.
스펙 만들기는 고등학생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고 대학생에게도 보편화된 현상이다.
좋은 성적과 영어 점수는 오래전에 기본 장착사항이 되었고 해외연수, 봉사, 인턴, 각종 자격증, 동아리 활동 등 과거에는 선택사양에도 들지 않던 스펙들이 점차 취업의 기본 스펙으로 변해가고 있다.
대학생들의 스펙 만들기 경쟁은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서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국내 고용시장의 구조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노동시장의 초과수요 현상으로 인하여 대학 졸업만 하면 구직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우리 경제가 저성장 궤도에 진입하고 경기침체가 지속 되면서 노동시장에서 초과공급 현상이 심화 되었고, 대학졸업장이 더 이상 취직을 보장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졸업장으로는 취업에 어렵고, 경쟁자 보다 좋은 스펙을 장착해서 기업에 잘 보이려는 유인이 커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성실하고 능력 있는 직원을 뽑고자 하나, 기업은 구직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과 같이 기업은 신입직원의 인성, 능력, 조직 친화력 등에 대하여 당사자 자신 만큼 알지 못한다.
따라서 면접에서 구직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불리한 정보는 숨기려는 유인을 갖기 마련이고, 면접관은 구직자가 보내오는 정보의 진실성을 다양한 간접자료를 이용하여 검증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의 스펙은 객관적인 검증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결국 스펙 만들기는 고용시장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현상인 것이다.
대학에서 좀 더 다양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학생평가 자료를 기업에게 제공할 수 있으면 학생들의 스펙 만들기 노력은 줄어들 수 있다.
대학이 재학생의 학점분포를 공개하고 학생들의 재수강 제한을 좀 더 강화하고, 기업이 교수의 추천서를 좀 더 객관적인 평가 자료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학생들의 스펙 만들기 비용은 줄어 들 수 있다.
그러나 대학생의 평균학점이 높아지면서 학점의 변별력은 하락하는 추세인 것 같다.
구직난을 고려해서 교수들이 온정적인 점수를 주기도 하고 학생들이 재수강을 통하여 학점세탁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평균학점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정보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새로운 스펙을 만들기 위하여 더 시간과 돈을 써야한다.
대학이 힘들어도 학점 인플레를 막고, 재수강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불필요한 스펙 만들기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대학간 경쟁으로 인하여 어느 한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해결 될 수 없다.
여러 대학이 공동으로 대응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