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선 교수님) 오마이뉴스

 

권영선

권영선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교수
ⓒ 홍현진

 

“2008년에 미국으로 안식년을 나갔어요. 그 때 우리나라에서 늘 하던 이야기가 우리가 ‘IT 강국’이라는 거였어요. 우리나라가 가구당 유선인터넷 보급률 1위잖아요. 속도도 빠르고. 그런데 미국에 갔더니 노트북만 들고 다니면 밖에서도 무선인터넷이 다 되는 거예요. 그것도 공짜로. 한국보다 초고속 인터넷 속도도 느리고 보급률도 낮은데, 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의 접근가능성은 훨씬 나은 거죠. 그 때 ‘뭔가 잘못됐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연구를 시작했죠.”

 

권영선 KAIST 경영과학과 교수(47)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무선랜(Wifi)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권 교수를 만나기 위해 KTX를 타고 대전으로 가는 길. 특실이 아닌 일반실에서는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카이스트 역시 ‘학생 인증’을 필요로 했다. 현재 한국의 무선인터넷 보급률은 2%. 무선인터넷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

 

여기서 잠깐, 무선인터넷은 ‘이동형’과 ‘고정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동형은 3G와 와이브로를, 고정형은 무선랜 즉 와이파이를 의미한다. 이 중 무선랜은 유선인터넷에 무선공유기 안테나를 설치하여 일정거리 이내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무선랜 이용 가능 지역인 ‘핫스팟’은 또 다시 유료와 무료 핫스팟으로 나뉜다. KT의 네스팟이 대표적인 유료 핫스팟이다. ‘네스팟 존’은 전국에 1만 3000여개가 있다.

 

권 교수는 3개 이동통신사로 대표되는 공급자위주의 통신시장환경으로 인해 무선랜 이용여건이 척박해졌다고 지적했다. 통신사업자들이 ‘유선인터넷망 사업’을 통한 수익에만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선인터넷망 투자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아이폰이 나오면서 무선인터넷의 중요성이 대두된 후에도, 통신사들은 3G와 같은 사용한 만큼 요금이 나오는 이동형 무선인터넷 활성화에 힘썼다.

 

경제학을 전공한 권 교수는 공짜 무선인터넷 사용가능지역을 확충하는 것이 사용자뿐만 아니라 통신 사업자에게도 나아가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권 교수는 ‘무선공유기’를 통한 무선인터넷의 ‘공유’를 강조하기도 했다. 권 교수와의 인터뷰는 20일 오전 카이스트 문지캠퍼스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공유기’로 무선인터넷 같이 쓰면 왜 안 되나

 

현재 한국의 무선인터넷 보급률은 2%. 무선인터넷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다.
ⓒ 화면캡쳐

 

 

- 해외의 무선인터넷 이용환경을 소개해 달라. 한국과 비교해서 어떠한가.

 

“미국에는 현재 핫스팟(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이 6만 8000여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약 67%가 무료다. 미국에서는 빵집, 커피숍 이런데서 싸게는 10만원에서 비싸면 30~40만원을 주고 무선공유기를 달아서 아무나 와서 쓸 수 있게 해준다. 꼭 빵을 사거나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 가게 주변에 있는 지역주민과 여행객도 자유롭게 이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공짜점심’은 아니다. 빵집 주인이 돈을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공짜다. 매출이 올라가기 때문에 빵집 주인에게도 이익이다.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무료 무선인터넷도 있다. 미국에서는 호텔 같은 데서 광고를 보지 않고는 무료 무선인터넷을 쓸 수 없도록 해 놓았는데, 이는 광고주에게도, 호텔에게도, 고객에게도 이득이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도 있다. ‘보잉고(Boingo)’라는 무선랜 서비스 제공사업자가 있는데 통신사업자들과 계약을 맺어서 고객들이 세계 어디를 가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오면 KT에서 네스팟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스페인의 ‘폰(Fon)’이라는 서비스도 있다. ‘폰’이라는 무선 공유기를 달아서 우리 집에 들어오는 유선인터넷을 다른 회원들이 쓸 수 있도록 한다. 반대로 내가 다른 회원들의 ‘폰’이 있는 곳에 가면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우리 집에 수도가 들어오는데 수도관을 여러 개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나눠 쓰는 거다.”

 

- ‘폰’같은 경우에는 2008년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가입자가 100만을 돌파했지만 한국에서는 가입자를 찾기 어렵다. 이는 공유기 사용이 ‘불법’으로 간주되는 한국의 상황 때문이 아닐까.

 

“불법은 아니다. 통신사가 막을 뿐이지. 우리나라 유선인터넷 사용자들은 보통 월정액 요금을 내고 인터넷을 이용한다. ‘정액’이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동안, 아무리 많이 써도 상관없다. 그런데 24시간 동안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24시간 내내 데이터가 오고가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이 좀 쓰게 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나.

 

통신사들의 입장은 이거다. 당신하고만 계약했는데 왜 다른 사람이 그걸 쓰냐. 그런데 아까 ‘수도’의 예를 들었듯이 일정량의 수돗물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물을 다른 사람과 나눠쓴다고 했을 때 그게 불법인가. 그리고 네트워크의 최대용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통신 사업자에게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물론 속도는 느려진다. 하지만 동시에 사용할 경우가 많지 않다.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어도 절반으로 느려지는 것도 아니다.”

 

무선랜 확충, 통신사업자가 오히려 반길 수도 있어

 

지하철에서 한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무선랜이 잡히지 않아 3G로 접속했다.
ⓒ 홍현진

 

- 공짜 무선인터넷 사용가능 지역이 확대는 통신사업자의 반발을 불러오지 않을까. 소위 ‘밥그릇’을 빼앗기게 되니 말이다.

 

“대체관계로 볼 것인가, 보완관계로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통신사업자가 ‘망 사업자’의 역할만 한다면 손해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통신사업자가 콘텐츠 사업자로 변화하고 있다. 그게 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봐라. 어떠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무선인터넷 이용이 쉽고 싸질수록 콘텐츠 이용도 늘어나게 된다. 방송사를 생각해봐라. 망 사업으로 돈을 버나, 광고수익으로 돈을 버나. 중요한 건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3G 이용량이 늘어나게 되면 네트워크를 업데이트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는 거다. 미국의 AT&T 같은 경우에는 작년에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무선랜을 확충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선랜 확충을 통신사가 오히려 더 반길지도 모른다.”

 

- 한국의 경우에도 아이폰 도입 3개월 만에 KT의 무선인터넷 데이터 트래픽이 120배 넘게 증가했다.

 

“뒤집어 말하면 데이터 트래픽이 120배나 늘었어도 아직까지는 네트워크를 확충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투자는 했는데(인프라는 구축이 되어 있는데) 이용을 안 한 거다. 통신사들은 무선인터넷에 비싼 요금을 매기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출시되는 휴대폰에는 와이파이를 빼버렸다. 아이폰이 국내에서 출시되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아이폰이 들어오고 나니 무선랜을 장착한 휴대폰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소비자는 한 마디로 ‘봉’이었다.

 

현재 이동통신사업은 SKT, KT, LGT 3개 사업자가 독과점을 하고 있다. 주관적일 수가 있는데 산업전략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시장경쟁을 시켜서 성공한 모델이 거의 없다. 포항제철 같은 경우에도 집중투자를 해서 성공했다. 정부가 ‘친소비자적’ 이라기 보다는 ‘친산업적’이다. 규제기관과 진흥기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있어서 진흥이 규제를 먹어버린다.”

 

공공기관과 통신사업자, ‘대체관계’ 아닌 ‘보완관계’ 되어야

 

- 무료 무선인터넷 확충 방안의 하나로, ‘지자체 자가망 구축’을 주장하고 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과 같은 정당의 경우 궁극적으로는 지자체가 자가망을 구축해 ‘공공재’로서 무료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이 경우, 지자체가 통신사업자와 경쟁을 하게 돼 ‘공정경쟁’을 침해할 수도 있지 않나.

 

“공공기관이 민간기관의 영역을 공식적으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2006년 기준으로 미국의 13개주에서는 아예 민간부분에서 서비스하는 부분에 공공부분이 들어갈 수 없도록 법으로 막아버리기도 했다. 공정경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도 지자체는 통신사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동사무소와 같은 공공기관, 공원, 관광지, 버스정류장 이런 데는 공공기관이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해주면 투자비를 줄여주고 통신사업자들도 반발이 적을 것이다. 지방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윈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공공과 민간의 무선인터넷 사업 역시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로 봐야한다. 현재 미국에는 유료 와이파이 핫스팟과 무료 와이파이 핫스팟이 공존한다.

 

지자체가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할 경우 유지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보스턴 같은 곳은 NGO에게 통신 사업권을 줘버렸다. 대신 민간사업자보다는 조금 싼 가격에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깐 네트워크를 자기들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민간사업자도 돈을 받고 쓸 수 있도록 했다.

 

만약 내가 빵집을 운영하는데 내 초고속 인터넷에 무선공유기를 달아서 무선인터넷을 무료로 제공을 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우리 가게에 무선인터넷이 된다고 광고를 해야 할 것 아닌가. 미국같은 경우에는 무선랜을 찾아주는 사이트도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정부가 해줄 수도 있다.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 지자체는 제한적으로 커버를 해주면 된다.”

 

SKT, KT, LGT 모두 ‘망’ 가질 필요 있나

 

- ‘중복투자’ 논란도 있는데.

 

“그럼 반대로 묻자. 왜 SKT, KT, LGT는 왜 각자 전국망을 까는가. 그건 중복투자 아닌가. 전국망은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스웨덴 같은 경우에는 3개 사업자가 있으면 지역분할을 해서 망을 깐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전국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망은 공유하되, 서비스는 경쟁을 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망 구축비용이나 유지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

 

‘네트워크 산업’이 어떻게 진화해갈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해야 한다. 전국망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 전력, 수도, 가스처럼 망 사업은 한 곳에서 담당하고 그 망을 토대로 비즈니스는 아무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가 중복투자라고 하는데 지금 인터넷망 사업은 한 지역에 수도관 세 개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왜 3개 사업자가 저마다 망을 가지고 있나. 이건 낭비다.”

 

- 공짜 무선인터넷의 경우, 사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가 아닌 상황에서 일부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기기보급에도 초점을 둬야 한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중고노트북을 수리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럴 경우, 무료 무선인터넷의 확충은 정보격차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무료로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으니 국민에게도 좋고 관광지랑 연계되면 관광산업도 활성화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용자 쪽이 좀 더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지금까지는 사업자집단의 견제세력으로서 사용자 쪽이 너무 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