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규 교수님 _ 국민일보[경제시평] 역동성 살릴 리더십

한국경제는 역동적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도 역동성의 힘이었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를 헤쳐 나올 수 있게 해 준 힘도 역동성이었다. 그것이 때론 어린 여공들의 손끝 정성에서, 때론 기업가들의 무모한 열정에서, 때론 사막 열기를 씹어 삼키는 건설 근로자들의 인내심에서 나왔지만 그것은 한국인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DNA였다.
활력 사라져가는 우리 경제
역동적이라 함은 무엇인가. 우선 환경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환경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남달리 빠른 적응을 보이는 것이다. 지난 50년 우리 사회에서 변화는 새로운 부와 지위를 의미했다. 그러기에 환경적응의 열망이 컸다. 이번의 경제위기도 그렇다. 2008년 말 그렇게 위기감에 헤매다가도 불과 몇 달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낙관과 열망에 불타는 곳이 한국이다. 역동적이라는 것은 또한 유연한 사고를 의미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가려면 유연해야 한다. 정주영은 조선소를 지어 놓고 수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수주를 받고 조선소를 지었다. 역동적이라 함은 또한 자신감을 의미한다.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말이다. 지금 미국 뉴욕 지하철 표에는 ‘optimism’(긍정)이란 말이 새겨져 있다. 긍정이 있어야 도전이 있고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경제는 그 역동성이 급속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왜 인가. 첫째, 변화가 막혀있어 새로운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시장은 대기업이 지배하고 사회에는 기득권 보호의 목소리가 크니 기회를 발견하기 어렵다. 신분상승의 기회를 찾기 어려우니 젊은이들의 꿈과 활력도 사라지게 되었다.
둘째, 유연성은 하락하고 경직성은 증가하고 있다. 경제는 발전했다고 하는데 미래를 바라보는 장기적 안목,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사고의 다양성은 약화되고 단기 실적주의, 획일주의가 득세한다. 양극화 구조가 심화되고 좌우 이념 대립까지 격화되니 갈등은 커지고 의사결정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셋째, 자신감이 과신으로 전환됐다. 미래를 믿는 긍정의 힘보다 과거의 성공에 도취하게 되었다. 저축과 절약의 미덕보다 소비와 풍요의 자랑이 우리를 지배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빚으로 호화청사를 짓고 더 큰 아파트를 향한 열망이 400조원을 넘는 주택담보대출이란 잠재적 폭탄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민에도, 지도층에도 미래를 살찌우겠다는 고민보다 미래세대의 몫을 당겨 지금 써버리는 풍조가 만연케 됐다.
새해 벽두부터 정부의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노력이 한창이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눈앞의 단기적 대증요법에 앞서 저(低)역동성의 구조와 체질을 개선할 진정한 고뇌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의 고용촉진 지원시책으로 일자리 하나 둘 더 만드는 것도 필요할 수는 있으나, 정부가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은 각종 서비스 산업에서 시장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와 규제를 획기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이다. 자동화가 불가피한 하드웨어 중심 산업 구조를, 최근 스마트폰 사례에서 보듯이 소프트웨어 중심 구조로 바꾸어 나가는 것도 근본적 노력이 될 것이다.
새로운 기회 찾아 나서야
그런 의미에서 하버드대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지적한 한국경제의 문제들, 즉 하드웨어 산업들이 중국 등 후발자의 추격에 의해 부서지기 쉬운 성공의 정점에 있다는 점과 새로운 기회를 찾는 창업 노력이 취약하다는 점은 특히 우리 경제가 유의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또한 창조와 혁신도 결국 자유로우면서도 공정한 질서에서 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동성의 대책이라는 것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나라나 리더십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국민들을 새롭게 움직이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홍규 (KAIST 교수 경영과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