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평] 한국 사회의 이중적 행태 [이홍규 교수님]

우스갯소리로 한국 사회를 ‘재미난 지옥(?)’이라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극심한 경쟁의 삶 속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건을 접해야 하는 곳이니 어찌 흥미롭지 않다 하겠는가. 지난 몇 주만 하더라도 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 낙마, 여권인사의 불법사찰 논란, 외교부 및 지자체의 특채 파문, 가짜 장인(匠人)에 의한 국새(國璽) 제작 파동 등 다양한 뉴스들이 숨 가삐 전개돼 왔다. 이것을 역동적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너무 한심하다고 해야 하나, 서민들로서는 좀 헷갈리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새삼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사회구나 하는 것이다. 겉으론 인의(仁義)·공정의 이상적 명분을 말하지만 속으론 부(富)·지위·권력의 현실적 욕망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경제 도약도 그런 개인적 욕망들이 명분에 주눅들지 않고 분출된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그러다 보니 인사 파문, 비자금, 위장 전입, 불법 사찰 등 크고 작은 위법·탈법·편법의 논란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를수록 사회적 신뢰 기반은 상실되고 거래 비용은 커진다는 점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커지는 것은 개인들의 욕망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에도 그 원인이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는 국가라는 사회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의 공급, 제도를 지키겠다는 약속의 이행, 그 약속을 감시할 감시활동의 작동 등 세 가지 퍼즐을 풀 수 있어야 한다 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 퍼즐을 풀어내고 있는가?
우선 제도적 측면을 보자. 제도는 명분과 현실의 접점에서 찾아진다. 명분론에 집착하면 현실이 무시돼 따르기 어려운 제도가 만들어지기 쉽다. 우리 사회는 명분에 집착하는 사회다. 그러니 법의 실천적 측면은 무시되고 무조건 막고 벌칙만 높인 법들이 양산되기 쉽다. 2004년 한국의 성매매금지법 같은 법들이 그것이다. 규제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경제분야에도 그런 법이 많다. 이런 법일수록 큰 효과는 없이 숨겨진 범법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위장전입을 막는 제도에도 그렇게 현실 무시의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중성이 크면 또한 제도 이행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기 힘들다. 제도가 작동되려면 그 제도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은 규칙을 위반하는데 자신만 규칙을 지키는 ‘순진한 바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법 준수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다. 이러한 법 준수 감각의 둔화가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은 더하는데 이 정도 위반쯤이야’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 염치까지도 사라질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이중적 사회에서는 감시장치 또한 작동되기 어렵다. 겉과 속이 다르니 투명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위법·탈법의 무임승차를 감시하는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처럼 온정주의·연고주의가 큰 상황에서는 감시장치가 있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감시가 이러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도 ‘재수 없어 걸렸다’는 인식이 만연될 것이고, 그러면 법과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공정사회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욕망 과잉의 시대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적절한 문제 제기인 것 같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자신을 다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문제는 그 내용과 실천이다. 공정사회가 되려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과잉 욕망의 제어를 위한 도덕심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진부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실천할 만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따르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이행 메커니즘을 강화하고, 위반하면 반드시 걸린다는 감시제도가 돼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인프라 구축이 장시간을 요하는 일이란 것이다. 명분에만 안주하고 있는 집단들의 반발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모두 호흡이 길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비록 2년 반의 임기를 남겨 놓은 정부라 하더라도 그 단초(端初)를 꿸 수는 있다. 국민이 진정 믿을 만한 공직자를 임명하고 그들에게 진정 그 힘을 실어 준다면 지금이라도 기대는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홍규 KAIST 교수·경영과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