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_김미경 교수님]KAISTAR WEBZINE 인터뷰

KAIST서 법학 비전공자 대상 지식재산권 부전공 과정 개설의사 15년, 법학 연구 9년…‘유명인의 아내’ 이상의 실력파 연구자“의사 삶 있었기에 법학도 길 의미 있어…끝까지 가보고 다른 길 가도 늦지 않아”

“제가 원래 인터뷰를 잘 안 해요.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유명한 남편 덕에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고, 늦은 나이에 전공을 바꾼 것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 사실 부담스럽죠. 제가 이번 학기에 야심 차게 개설한 지식재산권 강의를 홍보하고 싶어서 인터뷰에 응했어요(웃음).”

김미경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사람이라면 누구다 다 아는 유명인의 아내다. 이름만 듣고 ‘이 사람이 누구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안철수 교수의 부인’이라고 하면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김 교수도 최근 의사생활 15년 만에 법학도로 전공을 바꾼 이력이 알려지며 새삼스레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을 들었다.

2008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안 교수가 KAIST 교수로 부임할 때, 김 교수도 함께 KAIST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관심은 안 교수에게 쏠려있었지만 KAIST 입장에서는 김 교수도 그에 못지않게 반갑고 고마운 인재였다. KAIST는 당시 과학기술정책대학원과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을 세우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었는데, 의학과 법학을 함께 전공한 김 교수야 말로 KAIST가 찾던 교수였기 때문이다.

그 어렵다는 전문의과정까지 마치고 의사생활 15년, 힘들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국 로스쿨에서의 법학 연구 9년. 그렇게 쌓은 만만치 않은 내공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김미경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술과 법, 당연히 함께 가야죠”

김미경 교수는 특히 생명공학 분야의 지식재산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신약이 까다롭고 엄격한 미국의 FDA 규정을 통과하지 못해 거대한 현지 의약품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예로 들며 “게임의 룰을 알아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는 그 룰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지가 점차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지식재산 및 비즈니스법을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는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학부생을 대상으로 ‘IP minor program’을 개설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는 우리나라에서 법학 비전공자에게 부전공으로 지식재산관련 분야를 가르치는 유일한 교과과정이다. 총 6과목 18학점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식재산권 개요부터 라이센싱, 소송까지의 전 과정을 포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요즘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더라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특허, 저작권과 브랜딩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며 “이제는 기술과 법을 함께 묶어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IP minor program 개설 이유를 밝혔다.

 

“교수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철저한 평가가 KAIST의 강점”
김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과학기술정책 분야 연구를 하고 싶었다. 마침 KAIST에서 과학기술정책대학원과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을 세우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었고 그는 지식재산권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을 선택했다.

김 교수에게 KAIST 구성원이 된 후 느낀 학교의 장점에 대해 물어봤다.

“KAIST는 한 명의 교수가 학교 안에서 의학과 법학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학교”라고 생각하는 김 교수는 KAIST의 유연성에 대해 칭찬했다. 학과 간 알력이나 정책 결정 과정의 복잡한 프로세스가 없어 교수가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는 것. 

“KAIST는 교수가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고 새 분야의 연구에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줘요. 우리나라의 다른 어느 대학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일이죠. 교수의 도전을 지원하는 것만큼은 KAIST가 독보적입니다. 물론, 자신의 선택한 길에서 살아남는 것은 교수의 몫이지만요.”

KAIST의 경쟁력은, 교수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하는 반면 그에 대한 평가를 혹독하고 냉정하게 시행하는 것에서 있다는 의미다.
“KAIST 학생들은 똑똑하죠. 하지만…”

2008년 부임하고 지식재산 관련 강의를 할 때 비교적 양이 많고 난이도도 있는 과제를 많이 내주었다는 김 교수는 학생들이 숙제를 다 해오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학생들이 처음엔 강의를 어려워하며 쉽게 가르쳐달라는 떼도 썼지만 수업을 통해 지식재산권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학생들 스스로 공부를 주도해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어려운 과제도 잘 해결하더라는 것.
하지만 그는 “학교 식당에 밥 먹으로 오는 학생들이 자전거를 아무 곳에다 두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엘리트에 걸 맞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공중도덕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보통 과학고 출신들이 조기졸업하고 KAIST에 입학하잖아요.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인 면에서 성숙할 기회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

화제를 약간 돌려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진로 변경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20~30대에는 전문의로서,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법학도로서의 길을 걸은 김 교수의 이력 덕분에 그의 삶은 단지 유명한 남편을 둔 아내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들 왜 그랬는지 궁금해 하지만 이유는 의외로 평범했다.

“왜 법학을 공부했냐고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 길을 안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짧은 인생 하고 싶은 공부 한 번 더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면 가장 정확하겠죠?(웃음)”

’40세가 되기 전에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던 김 교수는 건강문제로 휴식기간이 필요하게 되자 의사생활을 잠시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마침 의료법과 바이오텍특허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이 부분이 중요하게 부상할 것이라 생각돼 미국 로스쿨에 입학했다.

“시작한 일 끝까지 해보세요. 그 때 다른 것을 해도 늦지 않아요”

김 교수에게 중간에 진로를 변경해본 경험이 있는 인생 선배로서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KAIST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실제로 그런 고민상담을 많이 받는지 그는 학생들이 진로 상담을 해오면 가장 먼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싫은가, 정말 네 적성에 맞지 않은가’를 꼭 물어본다고 한다. 대부분 학생들의 답은 ‘꼭 싫지는 않지만 자기 적성을 발견할 기회가 없어서 이 분야를 선택했고 다른 길이 있을 것 같아서’라고.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라면서 일단 이왕 선택한 것 박사까지 끝까지 해보라고 학생들에게 권유한다. 본인도 의사로서 충분한 연구를 해봤고 임상경험도 있기 때문에 법학도로서 두 학문을 융합할 수 있는 위치에 선 것이지 만약 의대 학부만 졸업하고 법학을 공부했다면 결코 지금과 같이 심도 있게 지식재산권 관련 연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어느 학문이든 적당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선택한 길로 끝까지 가보고 다른 분야에 발을 담가도 늦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공학도를 위한 제대로 된 IP 교육 모델 개발이 목표”

마지막으로 KAIST에서 본인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KAIST가 지식재산권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교육에 나서고 있음을 알리는 게 제 첫 번째 임무죠. 그 교육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까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KMK
김 교수는 이곳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지식재산권을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모델과 교재를 개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변리사를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법학도를 위한 교재는 많으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에게 맞는 교과서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그는 최근 ‘IP 스냅샷’이란 책의 초고를 완성했다.

“통합적 사고의 틀에서 지식재산권을 바라보는 교수가 법적인 지식이 없는 학생들에게 기초부터 실전 사례까지 풍부하게 지도할 수 있도록 만든 교재로 강의한다면 최상의 궁합이죠. 지금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유명세와 달리 김 교수는 편안한 인상에 털털한 성격의 이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중간에 찾아온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죠?’, ‘이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저도 생각해 볼게요’라며 조근 조근 고민을 나눴다.

의료 현장에서 발로 뛰던 김미경 교수가 이제는 지식재산권 교육과 연구에 자신의 열정을 쏟고 있다. KAIST 학생들이 그의 가르침을 통해 기술과 법이란 두 개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라 전 세계를 누비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