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4차 산업혁명, 사원에게 ‘적시’를 신탁하자

윤태성 교수님의 글이 매일경제 오피니언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윤태성 교수

우리나라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비결로 빠른 의사결정을 꼽는 사람도 많다. 재벌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다르지 않다. 경영자가 빠르게 결정하면 전 사원이 일치단결해 추진한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서 평소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즉시(卽時)`가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다.

우리나라 기업을 흔히 패스트 폴로어 전략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빠른 추격자가 돼 앞서가는 선도 기업을 뒤좇아간다는 의미다. 선도 기업 뒤를 누구보다도 빨리 좇아가려니 모든 일을 즉시 해야 하고 항상 바쁘다. 즉시야말로 빠른 추격자의 생존 조건이다. 이를 자전거에 비유할 수 있다. 선도 기업은 앞바퀴와 같다. 멀리 바라보며 방향을 정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추격자는 뒷바퀴와 같다.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면 뒷바퀴에 연결된 체인을 지금 당장 돌려야 한다. 바쁘지 않은 추격자는 없다. 즉시를 중시하는 태도는 기술 개발은 물론 사업 모델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인터넷 구매는 주문받은 당일 배송한다. 이메일은 발신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발신한다. 패스트푸드는 주문과 동시에 제공한다.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문화와 함께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터넷 시대에 가장 적합한 조건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대는 변한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에서 초연결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변하고 있다. 어떤 기업 뒤를 좇아가면 좋을지 애매하고 선두로 나서기도 쉽지 않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런 시대에 여전히 즉시가 중요한가. 적시(適時)라는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다. 지금까지 즉시를 외치며 성장을 거듭해온 기업이지만 이제부터는 적시가 필요하다. 변화는 이미 사업 모델에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 구매는 조금 늦게 배송하는 대신 제품 가격을 낮춘다. 이메일은 발신 버튼을 눌러도 즉시 발신되지 않고 취소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는 주문을 받은 후에야 만들기 시작한다. 고객 역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기업이 적시라고 판단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 고객을 포함한 업계 전체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춘다. 기업이 단독으로 기술을 개발하기도 어렵고 기껏 개발한 제품을 보급하기도 어렵다. 개방형 혁신이나 생태계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여러 기업이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하면서 맞춰가는 시점이 적시다. 둘,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춘다. 정부가 많은 예산을 만들어 기업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정책이 요구하는 시점이 적시다. 정책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거나 사업을 실행한다. 이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기업에서는 외부 환경과 내부 사정을 바탕으로 자사의 로드맵을 작성한다. 로드맵에는 기업 입장에서 바라본 적시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에는 로드맵대로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적시라고 정했던 시점도 계속 변한다. 실행을 너무 일찍 하거나 너무 늦게 하는 셈이 돼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적시는 항상 변한다.

즉시를 버리고 적시를 취하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언제가 적시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 크다. 다행히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적시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원이다. 언제가 적시인지 알고 싶다면 사원을 보면 된다. 대부분 사원이 자발적으로 신나게 집중해서 실행하는 시점이 바로 적시다. 지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면서 실행하고 있다면 적시가 아니다. 사원이 적시를 만들고 적시를 부순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환경은 계속 변한다. 하지만 기업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업은 살아남아야 한다. 기업은 제품을 판매하고 이익만 얻으면 되는 집단이 아니다. 사원의 인생을 담보하고 사회 성장을 이끌어가는 존재다. 사원은 기업에 의존하지만 기업 역시 의지할 곳은 사원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맞이하려면 사원에게 `적시`를 신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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