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신기술을 향한 서비스업의 짝사랑

윤태성 교수님의 글이 매일경제 오피니언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윤태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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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장수 이성계가 우물가를 찾았다. 호랑이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 말라서다. 마침 여인이 있길래 물 한잔 달라고 청했다. 여인은 표주박에 물을 뜨고서는 이성계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물 위에 버들잎을 몇 개 띄우고 나서야 표주박을 건네주었다. 이성계는 몹시 목이 말라 한입에 마시고 싶었지만 버들잎을 후후 불면서 마시느라 조금씩 마실 수밖에 없었다.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하는데 이를 방지하려고 일부러 버들잎을 띄웠기 때문이다. 여인은 훗날 이성계와 혼인하여 조선의 첫 왕비인 신덕왕후가 되었다. 배려 가득한 서비스를 제공한 여인과 이에 감동한 고객이 혼인까지 하였으니 가히 완벽한 서비스라 할 만하다. 이 일화에 화제가 되고 있는 신기술을 적용해보았다. 한 고객이 우물가에 가서 물 한잔 달라고 청했다. 로봇은 고객의 얼굴을 인식해서 단골인지를 파악한 후에 땀 한 방울을 채취해 생체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인공지능 의사에게 처방을 요청했다. 인공지능 의사는 기계학습으로 터득한 인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물의 양과 버들잎의 개수를 지시했다. 로봇은 지시대로 고객에게 물을 주었고 고객은 안심하고 물을 마셨다.

버들잎은 탄생에서 성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추적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물은 고객의 생체 데이터에 맞춰 미지근하게 데워져 있어 마시기 편하다. 물을 청하고 마시는 과정은 모두 클라우드에 저장되며 인공지능 닥터는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기계학습을 강화한다. 이 스토리는 각 고객에게 최적화한 맞춤형 서비스가 신기술을 이용하면 가능해질 거라는 기대감을 나타낸다.

서비스업은 제조업에 비해 기계화와 자동화가 어렵기 때문에 생산성이 낮다. 표준화가 어렵기 때문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서비스 품질이 크게 변한다. 제공자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한 배려는 이성계 일화처럼 항상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제공자마다 편차가 너무 심해서 서비스업 전체로서는 서비스 품질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도 어렵다.

서비스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은 서비스업의 커다란 약점이다. 이런 상황에 신기술을 적용하면 적은 비용과 높은 효율로 서비스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신기술은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고객의 특성 이해, 클라우드를 이용한 빅데이터의 저장과 활용, 블록체인을 이용한 상품 유통 과정의 추적, 사람 대신 로봇을 이용한 서비스 공정의 처리 등 신기술은 서비스업에 하나씩 도입되고 있다. 신기술로 인해 고객이 웃을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에 있어 신기술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신기술을 아무리 많이 적용해도 그것만으로 완벽한 서비스가 탄생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기술은 그저 기술일 뿐이다. 서비스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서비스업은 고객에게 웃음만 주지 않는다. 고객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역시 서비스업의 역할이다. 서비스가 완벽한지는 고객이 판단한다. 물을 떠주면서 함께 버들잎을 띄워준 여인의 가치를 알아본 건 이성계다. 인공지능 의사의 처방을 판단하는 건 물을 요청한 고객이다.

서비스업이 고객을 잊어버리고 신기술에만 의존하는 건 본질적으로 짝사랑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사랑을 하려면 고객 참여가 필요하다. 어떤 신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서비스업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여전히 고객이다. 진정으로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올리고 싶다면 한번이라도 더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고객은 왜 웃는지, 왜 눈물을 흘리는지 들어야 한다. 서비스업이 고객의 눈물을 이해하고 신기술을 활용해 이를 닦아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신기술은 서비스업의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신기술을 향한 서비스업의 짝사랑은 고객이 함께할 때만 완전한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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