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홍규]‘작은 실험실’ 팹랩에서 창조경제 길을 찾다 (동아A.Com 발췌)

http://news.donga.com/3/all/20140311/61595756/1

새벽 5시. KAIST의 ‘팹랩(fab lab)’인 ‘아이디어 팩토리’. 대학 2년생 김 군은 10시간째 3D 프린터와 씨름 중이다. 분해한 부품들을 하나하나 다시 조립해 나가는 김 군의 마음은 밤샘의 피로보다 오늘 이 장비로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볼 로봇 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김 군에게는 이곳의 장비 하나하나가 자신의 분신이고, 이 공간이 바로 자신의 놀이터이다. 그는 지난 8개월을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에게 이곳은 생각이 자유로운 자유의 공간이고, 친구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교류의 공간이다.

팹랩은 1998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시작된 작은 제작 실험실이다.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기 등의 장비를 갖추고, PC로 그린 설계도면을 실제 제작해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이 팹랩 열풍이 세계 곳곳에 불고 있다. 팹랩이 가진 의미는 무엇보다 기존 실험실과 달리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공간이 가능하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제조업을 부활시킬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 제조업의 핵심은 디자인 경쟁력이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를 제품 제작으로 연결할 디자인의 실험과 기획 역량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경쟁력이고, 팹랩은 그 최적의 공간이다. 대중들이 가진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품 디자인에 직접 반영해보는 최근의 ‘크라우드 소싱’ 방식 또한 팹랩을 통해 더욱 촉진될 수 있다.

둘째, 팹랩은 무엇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보는 DIY(Do It Yourself) 문화의 확산 공간이다. 무엇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창의성 개발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장배경에는 기능공이었던 양아버지 폴과 엔지니어였던 동네아저씨 래리 랭의 작업창고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곳을 들락거렸던 스티브 잡스이기에 자신의 DNA에 있던 창의성을 발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팹랩은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결합시키는 컨버전스 공간이다. 현대는 컨버전스 시대이고 혁신적 아이디어는 융·복합적 만남과 교류에서 시작된다. 아이디어를 놓고 벌이는 토론과 비판, 정서적 결속은 아이디어의 융합과 세련화를 가져온다.

넷째, 팹랩은 중소기업형 시제품의 제작 공간이다. 경량적 혁신과 소규모 맞춤형 기술을 지향하는 팹랩이기에 소량다품종 시장에 적합한 다양한 디자인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팹랩은 이 시대의 과제인 창조경제의 한 활로가 될 수 있다. 팹랩을 통해 국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새롭게 묶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길이다. 미래의 성장 동력이 무엇보다 절실한 우리 경제이기에 새로운 실험 제작정신 또한 그만큼 절실한 일이다. 정부가 전국 곳곳에 창조경제 타운을 설치한다고 하니 이제 이런 팹랩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팹랩이 진정 성과를 거두려면 하드웨어적 장비와 시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영 노하우인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좋은 장비를 갖다 놓아도 사람이 찾지 않고 제대로 쓰이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팹랩의 성과는 KAIST의 김 군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곳을 찾느냐에 달려 있다. 창조란 바로 그 사람들의 ‘끌림과 몰입’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홍규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사회기술혁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