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AI 생태계의 지배자

매일 경제에 윤태성 교수님의 글이 실렸습니다.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0/09/1007379/

국가는 거들 뿐

기술이 진화하면 시장이 생긴다. 기술과 시장에 더해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까지 합하면 생태계가 생긴다. 인터넷은 좋은 사례다. 인터넷은 1960년대에 미국에서 발명된 기술이다.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보급되면서 기술은 조금씩 진화했으나 시장은 199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확장되었다. 1994년 아마존을 필두로 야후, 구글, 네이버 등 인터넷 기술을 사용해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조한 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이들 기업은 처음에는 각자 사업을 개발했다. 사업모델이 점점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거대한 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생태계가 만들어졌고 세상은 바뀌었다.

기술은 시장과 상호 작용한다. 인공지능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세상을 바꿀 원동력이라는 기대가 큰 만큼 처음부터 기술과 시장을 포함한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주인공은 기술을 발명하는 개발자와 시장을 상상하는 경영자다.

개발자는 기술을 발명한다. 1940년대 튜링 이래 1970년대 전문가 시스템이 나오고 1990년대 왓슨을 거치더니 2010년대에 알파고가 등장했다. 기계학습 기술이 크게 진화하면서 금융, 의료, 교육, 제조 등 거의 모든 사업에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인공지능 기술을 발명하려면 컴퓨터 공학만이 아니라 수학, 전자, 기계 등 다양한 지식을 융합해야 한다. 지식을 융합하는 작업은 결국 사람에게 달렸기 때문에 국내에도 인공지능 대학원이 여럿 개설되었다. 학교에서는 인공지능이 답을 잘할 수 있는 문제를 교육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데이터를 구축하고 학습하면 인공지능은 답을 제시한다. 인공지능이 흑인을 고릴라로 인식하거나 히틀러를 찬양하면 답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사람이 알아챌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잘못을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인공지능이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라고 결정하거나 특정 지역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하면 답이 옳은지 여부를 알아채기 어렵다. 설사 잘못을 알아채더라도 어디를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고 학습용 데이터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학습 과정에서 사람이 가진 편견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학습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모든 과정에서 편견이 끼어든다.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건물 내부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차량 운행 간격을 바꾸는 정도라면 잘못이 있더라도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차별하거나 기업의 존폐를 좌우한다면 이는 큰 위험이다. 인공지능의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 기술자는 더욱 완벽한 기술을 발명해야 한다.

경영자는 시장을 상상한다. 지금까지 없었던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시장을 창조하는 출발점은 상상이다. 공유경제나 클라우드 컴퓨팅 역시 몇 년 전까지는 상상에 불과했다. 인공지능을 사용한 사업모델은 지금은 기존 사업에 기술을 사용하는 수준이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정도의 기업도 있다. 기술을 사용해서 지금까지 없었던 시장을 창조하고 확장하려면 상상하는 경영자가 필요하다. 상상은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다. 시장에는 자금조달, 조직관리, 판로개척, 채권회수, 규제회피 등 다양한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경험 많은 경영자도 필요하다. 상상이 시장을 창조하면 경험이 시장을 확장시킨다.

어떤 기술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기술을 사용한 사업이 있고 사업을 전개하는 시장이 필요하다. 기술이 상식이 되어야 세상이 바뀐다. 인공지능 생태계의 지배자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상상하는 경영자와 발명하는 기술자가 함께 나서야 할 시기다.

[윤태성 객원논설위원·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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